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와 AI 모델의 글로벌 확산을 규제하는 프레임워크를 발표하였다. 새로운 프레임워크는 전세계 국가를 그 대상으로 함으로써 중국이 제3국을 통해 AI 자생력을 강화하는 우회로마저 차단하려는 시도이며, 장기적으로 AI 생태계의 구도를 미국 중심으로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최종안은 트럼프 취임 이후에 확정될 예정이지만 기본적인 정책 기조는 유지될 전망이다. 이에 이번 미국의 강력한 AI 규제안의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 본다. |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월 13일에 발표한 ‘첨단 AI 기술의 책임있는 확산 프레임워크’(Framework for Responsible Diffusion of Advanced AI Technology)는 반도체는 물론 첨단 AI 모델 해외 확산을 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1]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이번 조치가 적대적 행위자의 AI 악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보 위협에 대응하고 미국의 기술 리더쉽을 강화하는 것이 그 목적임을 강조해, 사실상 미‧중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배경임을 시사했다. 우회로까지 차단하는 범세계적 통제
프레임워크의 골자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반도체 및 AI 모델의 확산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이고 두 번째는 통제 대상의 전세계적인 확대이다. 반도체 수출 규제는 제3국을 통한 우회가 가능하고, 우회로를 통해 발전시킨 적성국의 AI 모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프레임워크는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함과 동시에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생태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프레임워크는 세계 각국을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첫 번째 그룹, 즉 우리나라, 일본, 대만, 주요 서방 국가들을 비롯한 우방국의 기업들은 첨단 칩의 수출, 데이터 센터 및 첨단 AI 모델의 글로벌 운용에서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단, 이들 국가의 ‘보편적이고 검증된 최종 사용자’(Universal Validated End User)로 허가받은 데이터 센터 기업들은 그들이 보유한 첨단 칩을 적어도 75% 수준으로 미국 및 우방국에 보유해야 하고 자국을 제외한 특정 국가에 7% 이상을 사용하면 안된다. 두 번째 그룹, 즉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이 지목하는 특정 국가들에는 반도체 수출이나 첨단 AI 모델 배치가 금지된다. 문제는 나머지 140여개국에 대한 통제로, 이들 국가들에 대해서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수출 및 재수출에 대한 제한을 설정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모델의 연산력에도 한계를 갖게 된다. 총연산력의 상한은 엔디비아의 H100 칩을 기준으로 2년간 32만개에 해당하는 연산력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싱가포르와 같이 미국의 우방국으로 인식되는 일부 국가는 물론이고 브라질, 인도 같은 거대 국가, 자체 AI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국가들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중국이나 러시아 등 미국에 적대적으로 분류된 국가들이 제3국을 통해 첨단 반도체를 확보하는 우회로를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연산력 상한 규제로 인해 첫번째 그룹에 속하는 우방국들을 제외한 많은 국가들은 개발하는 첨단 AI 모델 성능에 제한을 받게 되며, 데이터 센터의 운영에 대해서도 특정 지역별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종합해 보면, 이러한 미국의 AI 통제 시스템은 미국 및 우방국 위주의 ‘신뢰성을 갖춘 국가 및 기업들로 구성된 배타적 AI 생태계’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체제를 형성할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이 프레임워크는 향후 120일 간의 민간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 트럼프 행정부가 프레임워크의 최종 모습이 확정되겠지만, AI 생태계 글로벌 패권 장악이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더라도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프레임워크의 기본 내용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의 강화 바이든 행정부의 AI 기술 확산 규제 프레임워크가 의도하는 바는 단순한 경쟁국 견제 차원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기준에 따르는 선별적인 통제를 통해서 미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안보를 명목으로 AI 승자와 패자를 자의적으로 선별하는 것이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함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이번 조치는 첨단 분야 기술 패권의 장악이라는 목표를 위해 시장의 요구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의 실행력은 미국이 AI 생태계에서 갖는 절대적인 위상에 기반한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소재, 장비 등 가치사슬의 전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장악하고 있어 모든 국가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할 수 있으며 첨단 AI 모델 개발에 있어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어 글로벌 차원의 통제를 실행할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AI 확산 규제 조치에 대헤서는 미국 기업과 세계 각국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된다. 미국 반도체 기업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이 문제이다. 월스트리트저널, eWEEK 과 같은 미디어에 따르면 엔디비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미국의 빅테크들은 이번 프레임워크 수립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산업계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고 미국 기업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2]
자체 개발하는 AI 시스템의 연산력에 제한을 받게 될 국가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미 중국 기업들의 클라우드가 자리잡고 있는 동남아 지역과 소버린 AI를 추구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UAE 등 중동 국가, 그리고 인도의 반발이 클 것이다. 실제 UAE는 거대 AI 모델인 Falcon을 공개하였고, 인도 또한 Krutrim과 같은 AI 기업들이 거대 언어모델을 자체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하였다. 소버린 AI는 시장경쟁보다는 특정 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이미 많은 국가들이 AI 발전 전략으로 채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 미국의 반도체 및 AI 모델 통제는 이러한 소버린 AI 추구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 프레임워크 시행의 현실적 어려움도 예상된다. 미국 반도체에 대한 해외 수요가 프레임워크에서 제시된 상한선을 초과하면 미국기업 간에 일종의 할당을 해야 할 수도 있고 할당의 기준도 세워야 할 것이다. 연산력 상한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AI 및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AI 생태계를 장악한 국가는 자국의 생산성 향상과 성장, 더 나아가 자신의 경제적, 군사적 힘을 외부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첨단 AI 모델의 전략적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타겟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중국은 이번 조치로 인해 자체 AI 모델의 강화를 위한 우회로까지 차단당함으로써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를 비롯하여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각종 제재 조치의 성패는 중국이 이러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강(自强) 능력을 갖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국은 물론 제3국에 고도의 AI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다면 이번 미국의 제재 조치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시장 상실과 영향력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중국은 현재 10~100 나노 사이의 성숙한 반도체 시장에서의 생산 공정 및 메모리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첨단 AI 모델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미세공정 능력의 한계, 첨단 제조 장비나 반도체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의 부재와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첨단 반도체의 수급상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중국 AI 모델의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제재는 중국 AI 발전에의 기술적 문턱 내지는 한계를 제시하고 목을 조르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반도체를 포함한 AI 생태계에서 진정한 자강을 이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자강을 위해서는 기술, 인력,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개방적 생태계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AI 및 반도체 봉쇄 정책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중국의 글로벌 AI생태계 참여는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의 대응은 산업 스파이 활동 강화나 고급인력 유치, 갈륨이나 게르마늄과 같은 희귀 광물의 무기화 등 중국이 레버리지를 보유한 영역에서 보복하는 것 정도일 것이지만, 이 정도로는 중국이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나라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각종 조치가 발표될 때마다 해당 조치가 우리 기업의 현지생산이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가 이번 프레임워크에서 우방국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AI 시스템의 수준에 대한 제한이 글로벌 AI 생태계 자체의 혁신과 확산, 그리고 주요국 간의 경쟁 구도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를 판단하고 우리가 이에 장기적으로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지 거시적인 국가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이번 미국의 AI 규제를 계기로 우리는 중국과 같은 국가들의 AI 경쟁력이 저하되고 미국 주도 AI 생태계가 글로벌 차원에서의 우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우리의 국가 전략을 수립,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미국의 AI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중국이나 다른 잠재적 경쟁국들이 받는 타격이 우리의 반사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AI 및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강력한 산업정책, 즉 보조금이나 획기적인 인력양성‧유치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미국 주도 AI 생태계에서 주요 플레이어가 되지 못한다면 반사이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 및 AI 모델 통제의 직접적 영향 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추가적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그 추가적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오픈소스 AI이다. 소버린 AI는 많은 중견국이 추구하는 전략이지만 우리나라는 AI 파운데이션 모델 분야의 약세, 특히 오픈소스 AI에의 과도한 의존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어쩌면 이번 프레임워크 규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오픈소스 AI에 대한 정책이다. 오픈소스 AI의 성능은 데이터, 파라미터, 소스 코드의 공개 정도, 즉 개방성의 수준에 의존하는데, 미국이 이를 통제할수록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AI 발전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프레임워크는 오픈소스 AI가 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였지만 향후 모델의 개방성 자체를 미국 정부나 메타와 같은 빅테크들이 제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이 AI 생태계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우리가 AI 생태계 가치사슬에서 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전략 분야를 보유해야 함은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전략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미세공정 기술과 HBM 분야에서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켜야 함은 물론이고, 오픈소스 AI에의 의존을 탈피할 폐쇄적(closed)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등을 향후 전략 분야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에게 줄 것이 없는 약자에게는 친구도 없다는 것이 트럼프가 가져올 각자도생의 시대의 생존원리이기 때문이다.
Endnotes
[ 1 ] 프레임워크의 핵심 내용은 다음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DEPARTMENT OF COMMERCE, 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 ‘Biden-Harris Administration Announces Regulatory Framework for the Responsible Diffusion of Advanced Artificial Intelligence Technology’ (2025. 1. 13) 세부 조항들은 15 CFR Parts 732, 734, 740, 742, 744, 748, 750, 762, 772, and 774 [Docket No. 250107-0007]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federalregister.gov/d/2025-00636) [ 2 ] 이미 프레임워크의 공개 이전부터 외부에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의견이 산업계 및 미디어에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ITIF, Export Controls on AI Chips: Biden's Overreach Risks U.S. Leadership in Tech (2015. 1. 7), eWEEK, ‘AI Chip Export Sanctions: Protecting or Impeding Growth?’ (2015. 1. 9), Wall Street Journal, “U.S. Targets China With New AI Curbs, Overriding Nvidia’s Objections” (2015. 1. 13) [ 3 ] 각국의 소버린 AI 추진에 대한 최근 동향은 Economist, ‘Welcome to the era of AI nationalism’(2015. 1. 1)에서 찾아볼 수 있다. Economist紙는 소버린 AI의 성공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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