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는 어떤 투자든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업종과 대상을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지금은 남보다 앞선 산업과 기술 혁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각자도생 시대다. 따라서 산업 경쟁력 강화와 미래 전략 산업 육성이 국가의 최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런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외국인 투자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제조 중흥 2035’ 같은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 역량을 총체적으로 결집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 내에 산업 정책과 과학기술 정책, 외국인 투자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를 두고, 전략 산업에 대한 종합적 지원과 이공계 인재 육성 및 영입, 과감한 규제 개혁, 전략적 외국인 투자 유치 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한국 산업의 활로 걸린 외국인 투자 지정학적 갈등과 불안정한 통상 환경이 지속하는 가운데 글로벌 외국인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외국인투자는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했고 2024년에 다시 8% 감소했다. 선진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15%나 줄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 아래 있는 유럽은 무려 45%가 줄었다. 그동안 거대 시장을 배경으로 외국인 투자를 빨아들이던 중국도 최근 2년간 2022년 대비 40% 감소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만 29% 줄었다.
글로벌 외국인투자 위축됐지만 작년 북미 지역 투자 13% 늘어 한국의 제조업 기반과 제조기술 외국인 투자자에 매력적인 요소 전략산업 종합 지원, 규제개혁 등 산업경쟁력 강화 위한 전략 시급 |
이런 와중에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 국가도 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은 2024년 전체 외국인 투자가 13% 늘었고, 그 중 그린필드(신규 공장 건설) 투자액은 15%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에 대한 그린필드 투자액은 26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무려 93% 성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 미국에 집중된 대규모 투자 덕분이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도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중국의 대안으로 떠오른 인도의 외국인 투자는 13% 증가했고, 동남아 아세안 국가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2% 증가했다.
작년 외국인 한국 투자액 5.6% 증가 이와 같은 글로벌 투자 동향은 미·중 간 통상 분쟁과 공급망 재편 등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가 미국·인도 등 일부 국가에는 오히려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2024년 한국이 유치한 외국인 투자액은 345억7000만 달러(신고 금액 기준)로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2021년부터 4년 연속 역대 최대 투자 유치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를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투자가 144억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1.6%나 증가했지만, 서비스업 투자는 178억3000만 달러로 0.3%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 특징이다.

투자국의 변화도 눈에 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최대 투자국이었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투자가 주춤하고, 그 대신 일본과 중국 기업의 투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일본 기업의 투자 신고액은 61억2000만 달러, 중국 기업은 57억9000만 달러로 각각 375.6%, 266.1% 증가했다. 반면 미국 기업은 52억4000만 달러, EU 기업은 51억 달러로 각각 14.6%, 18.1% 감소했다.
국내에 투자한 외투기업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국내 외투기업의 2023년 매출은 628조원이었고, 고용 인원은 83만4000명, 수출은 1317억 달러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 대비 외국인 투자의 비중은 아직 상당히 낮은 편이다. 2023년 기준 국내 외국인 투자 잔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6%였다. 이는 전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GDP 대비 외국인 투자 비율(52%)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GDP 대비 외국인 투자액 비율은 47%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는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개도국에는 필수적인 경제 개발 수단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한 선진국에도 외국인 투자는 여전히 중요하다. 세계 최대 투자 유치국인 미국 상무부는 외국인 투자의 긍정적 효과로 ▶국내 일자리 창출과 임금 상승 ▶외투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수출 증대 ▶자국 내 제조업 및 서비스업 강화 ▶생산성 향상 ▶새로운 연구·개발(R&D) 및 기술·노하우 이전 등을 들고 있다. 이런 외국인 투자의 긍정적 효과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외국인 투자,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 최근에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안보적 측면에서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국가 안보적 과제로 규정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외국의 반도체·배터리 기업을 미국에 유치했다. 뒤이어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노골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안보적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 2월 발표한 ‘미국 우선 투자 정책’(America First Investment Policy)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투자 정책이 국가 안보에 중요하며, 외국인 투자 유치는 미국의 황금시대를 이끄는 핵심 부분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그가 전 세계를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는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에 투자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외국인 투자의 안보적 중요성은 한국에도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은 전통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2차전지 등 미래 첨단산업의 경쟁력에서 중국 등에 밀리고, 반도체마저 1위 자리를 내줄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을 위해 미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게 된 상황과 비슷한 위기 상황이 한국에 닥칠 수 있다. 민관이 위기감을 갖고 기술 혁신과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체적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다.
중국은 10년 전 ‘중국 제조 2025’의 기치 아래 10대 핵심 기술 및 AI 개발에 국기 재원을 쏟아붓고, 과감한 이공계 인재 육성,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 등을 병행해 제조업 굴기를 달성했다. 이러한 제조업 육성 과정에서 비록 외국 기술을 탈취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외국기업의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FDI 신뢰도 순위 상승 우리도 외국인 투자를 위기에 처한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외국인 투자 환경은 나쁘지 않다. 글로벌 경영 전략 컨설팅 회사인 커니(Kearney)가 외국 기업 경영자를 상대로 각국의 투자 환경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 작성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신뢰도 인덱스에서 한국은 2025년에 14위에 등재됐다. 2024년 세계 20위에서 크게 도약한 것이다. 아시아의 외국인투자 허브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가 15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투자 환경에 대한 외국인 평가는 상당히 좋은 셈이다. 커니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FDI 신뢰도 1위를 지켜온 미국은 높은 기술 혁신 수준과 견고한 경제 지표에서 경쟁국을 압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도 상당한 수준의 기술 혁신과 고도로 발달한 비즈니스 환경이 강점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우리의 외국인 투자 환경이 선진 경쟁국보다 압도적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외국 투자자는 한국의 복잡하고 불투명한 규제 구조가 발달한 비즈니스 환경을 상쇄한다고 느낀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산업 발전을 위해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국내 외투기업은 ‘규제 개선’을 1순위 과제로 꼽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잘 발달한 제조업 기반과 축적된 제조 기술은 외국 투자자에게 강력한 셀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비록 지금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우리의 촘촘한 제조업 기반은 여전히 미국도 가지지 못한 중요한 자산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AI나 로봇도 결국은 제조업에 적용되거나 제조업과 결합해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제조업 기반은 그 자체로 미래 전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며,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 요소라 할 수 있다.
대만은 발달한 제조업 기반을 토대로 세계적 기술 기업 엔비디아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지난해 6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실리콘밸리 본사에 버금가는 대규모 R&D 및 설계 거점을 대만에 설치하고 1000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트윈’(물리적인 사물과 컴퓨터에 동일하게 표현되는 가상 모델)을 이용한 ‘제조 AI’ 기업에도 투자했다. 엔비디아의 대규모 투자로 대만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 통해 산업 육성 나서야
외국인 투자는 어떤 투자든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업종과 대상을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지금은 남보다 앞선 산업과 기술 혁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각자도생 시대다. 따라서 산업 경쟁력 강화와 미래 전략 산업 육성이 국가의 최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런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외국인 투자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제조 중흥 2035’ 같은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 역량을 총체적으로 결집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 내에 산업 정책과 과학기술 정책, 외국인 투자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를 두고, 전략 산업에 대한 종합적 지원과 이공계 인재 육성 및 영입, 과감한 규제 개혁, 전략적 외국인 투자 유치 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두식 외국인 투자 옴부즈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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