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테크앤트레이드연구원 이사장 김두식 2025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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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4월 29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지난 100일은 트럼프의 관세 부과로 전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대혼란에 빠진 기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10%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추가로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목적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나 무역적자를 완화하고 미국내 제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상호관세 부과만으로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미국은 무역상대국과의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패지 내지 완화해 주는 조건으로 무언가 더 큰 대가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고, 무역상대국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상호관세는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미국내 인플레이션 압박이 증가하고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국채 수익률이 폭등했다. 미국의 안정된 경제정책과 달러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무역상대국들과의 협상이 예상대로 흘러갈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예상외로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이 오히려 중국에 대해 협상 테이블로 나와달라고 간청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동시에 트럼프의 미국내 정치적 입지도 약화되고 있다. 워싱톤포스트(WP)가 최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하여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39%, ‘부정’평가는 55%에 달했다. WP는 이런 지지울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선거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흑인 · 히스패닉 · 아시안 등 소수인종의 반감이 크게 늘고 있다. 트럼프의 무모한 관세 부과로 오히려 서민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근본적으로 법적 정당성과 경제적 합리성을 결여했다. 게다가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란 말은 무역상대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에 상응하는 관세라는 의미지만,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상대국의 관세나 비관세 장벽을 고려하지 않고 결정됐다. 이와 같이 정당성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관세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폭력적 수단으로 인식될 뿐이다. 결국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명분을 찾아 상호관세를 퇴출시키거나 대폭 완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상호관세 부과조치의 개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모든 국가들에게 보편적으로 부과한 10% 기본관세와, 행정명령 부속서 I에 열거된 57개국에 부과한 추가관세로 구성된다. 한국에게는 기본관세 10%와 추가관세 15%를 합한 25%의 관세가 부과됐다.
<주요국 대상 부과 상호관세율>
베트남 | 중국 | 대만 | 인니 | 인도 | 한국 | 일본 | EU | 이스라엘 |
46% | 34% | 32% | 32% | 26% | 25% | 24% | 20% | 17% |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미 국경 문제(마약)를 이유로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이번 상호관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일부 품목들은 상호관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즉,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의거하여 25% 관세를 부과하였거나 부과할 예정인 ▲철강 · 알루미늄과 그 파생제품 (3월 12일 관세 부과), ▲자동차 · 자동차 핵심부품(자동차는 4월 3일부터 관세부과, 자동차 핵심부품에 대해서는 5월 3일 이전에 관세 부과 예정), ▲구리, 목재 등(조사 中)은 상호관세의 부과대상이 아니다. 이런 품목들에 대해서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의한 25% 관세만 부과된다.
또한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장비, 반도체가 포함된 관련 상품, 의약품과 의약품 원료에 대해서도 상호관세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들 제품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현재 주요 국가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EU및 일본과의 협상이 시작됐고, 한국을 비롯한 호주, 영국, 인도 등 소위 우선협상국들(top targets)과의 협상이 이어질 예정이다.
미국은 엄청난 고율의 관세와 보복관세를 주고받은 중국과도 현재 물밑에서 관세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는 이미 중국에 펜타닐 유통을 문제삼아 20%의 IEEPA관세를 부과한바 있다. 트럼프는 이에 추가하여 34%의 상호관세를 중국에 부과했다. 그러자 중국은 즉각 보복에 나서 4월 4일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34%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미국이 다시 50%의 추가관세를 부과하여 중국에 대한 총 관세율을 104%로 끌어올렸고, 중국은 다시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를 84%로 인상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와 같은 몇 차례의 보복과 재보복을 거치면서 현재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총관세율은 145% (일부품목에 대해서는 200% 이상)에 달하고, 중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도 125%에 이르게 되었다. 중국은 이미 800달러 이하의 소액물품에 대한 미국의 무관세 혜택(de minimis tariff) 폐지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5월 2일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소액물품에 대해서는 30% 혹은 품목당 $25 관세가 적용될 예정이다. 6월 1일 이후에는 관세가 품목당 $50로 인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율의 상호관세까지 계속 부과된다면 중국과 미국간의 교역이 사실상 단절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간의 관세협상의 향배가 주목되는 이유다.
전혀 상호적(reciprocal)이지 않은 상호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무역상대국이 미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환율조작, 비관세장벽 등을 고려하여 이를 상쇄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각국에 부과된 상호관세율은 미국의 무역적자액에 기초하여 결정됐다. 구체적으로, 무역상대국에 대한 미국의 상품무역 적자액을 미국의 수출액으로 나눈 숫자에 50%를 곱하여 해당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정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공개한 상호관세 산출 공식은 다음과 같다.
<상호관세율 계산 방법>
| Ti : 미국이 i국에 부과하는 관세율 ΔTi : 관세율의 변화 mi : i국에서 미국으로의 전체 수입액 Xi : i국에 대한 미국의 전체 수출액 ε :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 (매개변수값: 4) Φ : 관세가 수입가격에 반영되는 비율(매개변수값: 0.25) |
위 상호관세 산출공식은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미국의 무역적자 외에, 무역상대국의 관세나 비관세장벽은 고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무역적자를 기준으로 사용하였지만, 특정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가 반드시 미국과 해당국 간의 관세율 차이나 해당국의 비관세장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므로,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상대국의 대미 관세 혹은 비관세 조치와 무관한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왜 생겼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해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개방국가이든, 높은 관세와 무역장벽을 설정하고 있는 보호국가이든 미국에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한 국가는 무조건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받는 구조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매우 자의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결정함으로써 산정된 결과 그 자체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예컨대 미국에 대해 무역적자를 기록한 호주 등에 대해서도 10% 기본관세를 매긴 것이라든가, 이미 다른 관세를 부과받은 캐나다와 멕시코는 상호관세 부과대상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이미 20% 관세를 부과받은 중국에 대해서는 34%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은 상호관세의 자의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상호관세율 결정에 사용된 미국의 무역적자에 상품무역만을 포함시키고 서비스 교역은 제외한 것도 자의적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서비스 수출국이다. 대부분의 무역상대국들은 미국에 대한 상품 수출에서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기술, 미디어, 은행 및 관광과 같은 서비스 교역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다. 4월 4일자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1], 20% 상호관세를 부과받은 EU의 경우 미국에 대한 서비스 적자를 포함시키면 상호관세율은 10%로 줄게 된다. 미국에 의약품이나 시계 등을 많이 수출하여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스위스는 서비스 교역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어, 포함시킬 경우 상호관세율은 31%에서 10%로 줄어야 한다.
또한 미국이 무역적자를 계산함에 있어서 2024년 수출입자료만을 사용하였다는 점도 자의적이다. 무역적자는 매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2024년 자료만을 사용하여 상호관세를 계산한다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예컨대 2024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수출했다. 하지만, 202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했다. 반대로 볼리비아의 경우에는 미국은 2024년 무역적자를 냈지만 2023년에는 흑자를 냈다. 이런 나라들에 대해 2024년 무역자료만을 사용하여 상호관세를 매기는 것은 미국의 실제 무역적자 상황을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시장 봉쇄와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미국시장으로의 수출이 매년 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9년 114억불, 2020년 166억불, 2021년 227억불, 2022년 280억불, 2023년444억불, 2024년 557억불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024년 무역적자만을 기초로 결정한 것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과장한 측면이 있다.
이와 같은 최근 연도의 특이상황에 의한 왜곡을 피하려면 예컨대 지난 5년간의 평균적인 무역적자를 사용하여 상호관세를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번처럼 2024년 무역적자액을 사용하여 상호관세를 결정하되, 매년 직전년도의 무역적자액을 작용하여 상호관세율을 수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매년 최근 무역적자액을 반영하여 상호관세를 조정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상대국과의 협상 카드로 거칠게 디자인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트럼프 상호관세의 법률적 정당성 여부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의 주된 법적 근거로 국가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인용했다. 이 법에 따라 무역상대국들의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경제정책에 기인한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국가안보에 대한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위협’(unusual and extraordinary threat to U.S national security)에 해당한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미국내 여러 단체들은 IEEPA를 근거로 한 트럼프의 관세 부과가 위법하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법원에 제소했다. 상호관세 부과로 가장 심대한 경제적 타격을 받는 캘리포니아주도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 중 신시민자유연맹(NCLA)은 트럼프의 상호관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위법 사유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둘째, 대통령이 선언한 국가 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관세가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IEEPA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셋째, 만약 IEEPA가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을 허용하는 것이라면 헌법상 의회의 입법권을 다른 부문에 위임할 수 없는 '위임금지 원칙(nondelegation principle)'에 위배된다. 넷째, 행정명령으로 관세율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 중,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강력하다. IEEPA의 법문을 보면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IEEPA에 근거하여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러한 관세부과는 이른바 ‘중요문제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에 반할 소지가 큰 것이다. ‘중요문제원칙’은 미국 연방법원이 판례법으로 확립한 법리로서, 행정부가 경제 및 정치에 광범위한 의미를 갖는 결정을 내리려면 연방의회의 명시적인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부과는 글로벌 경제와 정치 외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문제’에 해당하므로 이 원칙에 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철회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 법원이 대통령의 행위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고 또 소송이 종료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소송들은 미국 국내법상으로도 상호관세가 법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효과는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국제법에도 반한다. 특히 외국 수입품에 일방적으로 기본관세와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은 GATT협정상의 최혜국대우(MFN) 규정(제1조)과 일방적 관세부과 및 수입제한조치를 금지하는 규정(제10조 등)을 위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한미FTA등 미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도 반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행위를 WTO 분쟁해결절차에 제소했다. 그러나WTO 상소기구가 마비된 현 상황에서 WTO분쟁절차에 제소하는 것은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WTO에 제소하거나 한미FTA위반으로 제소하기 보다는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택했다.
상호관세의 경제적 정당성 여부 - 이른바 ‘공공재에 대한 대가’라는 이론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은 트럼프 상호관세 정책을 입안한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미란은 지난 4월 7일 허드슨 연구소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미국이 제공하는 기축통화와 군사안보 등과 같은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s) 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며 상호관세의 정당성을 옹호했다.[2] 미란은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이 수십년간 미국이 제공하는 공공재에 무임승차(free-riding)해 왔다면서, 이와 같이 글로벌 공공재의 혜택을 누려온 국가들은 비용 분담의 차원에서 트럼프의 상호관세를 부담하거나 자기들이 받은 혜택만큼 미국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공공재” 이론은 경제학자인 미란이 경제학 이론에 꿰맞춘 주장이지만 설득력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이 전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구축해온 경제질서와 안보질서를 모든 국가들을 위한 공공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 간의 관계는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문화적 측면 등이 복합적으로 응축되어 있는 것으로서 이를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미국이 구축한 경제 및 안보질서를 공공재로 보더라도 국가 간의 상호교류로 형성되는 국제질서 안에서 각국은 나름의 이익을 누리고 다른 국가들과 유무형의 대가를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사실상 그 공공재에 대한 대가는 상호 정산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이용해 국제사회에 막강한 힘을 행사해 왔고, 다른 국가가 누릴 수 없는 막대한 국채발행을 통해 자유로이 재정을 운용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수십년간 형성된 국제 경제 및 안보질서를 갑자기 공공재라고 주장하며 상대방 국가에게 대가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공감을 얻기 어렵다.
미란 위원장은 미국을 대체할만한 시장이 없기 때문에 교역 상대국들이 보복 없이 트럼프의 상호관세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대다수의 국가들이 미국과 상호관세 협상에 나서는 이유는 거대한 미국 시장을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란의 이런 발언은 본인이 제시한 공공재 논리와 모순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상호관세가 망가진 국제 무역시스템에 대한 대응이라는 논리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및 제조업 선임고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는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망가진(broken) 국제 무역시스템의 공정성과 균형성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며 상호관세를 정당화하고 있다.
나바로는 지난 4월 8일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편향된 WTO 규칙 때문에 주요 무역상대국들로부터 체계적으로 더 높은 관세와 징벌적인 비관세 장벽에 직면해 왔으며 그 결과 미국은 경제적 번영과 국가 안보를 위협받는 국가적 비상사태에 처하게 됐다는 논리를 폈다.[3] 나바로에 따르면 연1조달러 이상으로 불어난 상품 무역적자는 미국이 처한 위기의 핵심이다. 그는 1976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의 무역적자로 인해 총 20조 달러 이상의 미국 자산이 해외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나바로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초래한 핵심 원인으로 WEO협정(GATT)상의 “최혜국대우”(MFN) 원칙을 꼽는다. MFN 원칙은 각 WTO회원국으로 하여금 특정국에 부과하는 자신의 최저관세를 다른 모든 국가들에게 똑같이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은 자신의 고율관세는 유지한 채, 미국이 제공하는 낮은 관세 혜택을 누림으로써, 미국에게 막대한 무역적자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나바로가 무역적자의 주된 원인을 관세율 차이에 돌리는 것은 문제지만, 나바로의 주장이 전혀 틀린 주장은 아니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MFN 관세율은 3.3% 수준인데, 중국은 7.5%, 태국과 베트남은 10% 이상, 인도는 무려 17%에 달하는 MFN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 EU는 미국 자동차에 대해 미국 관세의 4배에 달하는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중국은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한편 나바로는 각국에 만연한 비관세장벽도 지적한다. 그는 각국이 환율조작, 부가가치세, 덤핑, 수출보조금, 국영기업, 지적재산권 절취, 차별적 상품표준, 수입쿼터나 수입금지, 불투명한 수입허가제도, 부담스러운 세관절차, 데이터(서버) 현지화 규정, EU등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소송 제기, 비도덕적이거나 반환경적인 노동 조건 등과 같은 비관세 무기(non-tariff weapons)를 사용하여 미국에 대한 수출을 늘리거나 미국 제품의 수입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나바로는 미국이 이와 같은 불공정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시정하기 위해 WTO분쟁절차를 이용했지만, 미국이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예로서, 미국은 1998년 EU와의 소고기 호르몬 분쟁에서 승소하였으나 EU는 아직까지 호르몬 처리된 미국 소고기의 수입 금지를 풀지 않고 있는 사실을 든다. 결론적으로 나바로는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WTO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런 불공정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미국에 대해 높은 관세와 비과세 장벽을 쌓고 있는 국가들에게 상응한 책임을 묻는 것이리고 주장한다.
나바로의 주장처럼, 현재의 WTO무역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국의 일방적인 상호관세 부과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나바로가 지적한 무역상대국들의 높은 관세나 비관세 장벽과 무관하게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 같은 패권국이 일방적인 관세 부과나 경제제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지난 수십년간 쌓아 올린 규칙 기반(rule-based) 경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궁극적 해결방안 - WTO개혁을 통한 공정한 국제 무역질서 회복
WTO 무역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나바로의 주장은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인도,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이 높은MFN관세 인하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고수하며 무역질서를 왜곡하고 있음에도, WTO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기후변화 등 새로운 통상현안을 규율할 규범이 필요하지만 WTO의 협상 기능이 작동되고 있지 않다. 다수 국가들이 합의한 복수간 협정이 일부 국가의 반대로 WTO협정으로 채택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WTO체제의 무기력함은 많은 국가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일방적 관세 부과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일방주의적 방식으로 구축된 새로운 무역질서가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WTO 개혁을 통한 공정한 다자무역질서의 회복이다. 이번 기회에 미국 등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WTO 중심의 글로벌 무역체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무역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ndnotes
[1] 2025. 4. 4. New York Times, “The Hidden Decisions Behind Trump’s Tariff Formula”
[2] 2025. 4. 13. World Trade Online, “CEA’s Miran says tariffs are ‘burden sharing’ for U.S. ‘global public goods’
[3] 2025. 4. 8. Financial Times, “Donald Trump’s tariffs will fox a broken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