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AI 혁신과 탈(脫)규제를 자신의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제시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 연방 AI법이 없는 상태에서 주(州) 차원의 AI규제법이 확산되고 있어 트럼프의 AI정책과 충돌이 예상된다. 본 연구원 김두식 이사장이 트럼프의 AI정책과 일부 주들의 AI규제 움직임 등을 살펴본다. |
바이든 대통령의 AI행정명령 폐기
차기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의 AI 정책은 작년 10월 발표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AI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폐기하는 것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AI 행정명령 폐기 방침은 공화당 정강(Platform)에 명시되어 있다. 바이든의 AI 행정명령이 AI 혁신을 방해한다는 것이 폐기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의 AI 행정명령은 AI가 제기하는 각종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연방정부 차원의 규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다만 유럽의 인공지능법이 AI에 의한 인간의 기본권 침해 위험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미국의 AI 행정명령은 AI가 초래할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AI 행정명령은 방위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적용하여 AI 시스템 개발자들에게 안전성 시험을 요구하고 그 시험 결과를 정부에 제출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미 연방 정부기관들에 대해서는 일정 시한 내에 AI 안전기준을 개발하도록 명령했다. 바이든의 AI 행정명령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이 아니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미 연방 차원에서 도입된 최초의 포괄적인 AI 규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행정명령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불과 1년여 만에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됐다. 트럼프 2기 AI 정책의 핵심: 규제에서 혁신으로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전임 대통령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하는 것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AI 정책을 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트럼프의 AI 정책이 큰 방향에서 AI에 대한 ‘규제’보다는 ‘혁신’에 중점을 둘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기본 경제정책 방향이 자유와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의 철폐에 있을 뿐 아니라, 첨단산업의 혁신을 통해 위대한 경제를 건설하겠다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핵심 산업 중 하나가 바로 AI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AI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AI 차르(Czar)’ 임명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AI 차르가 임명되면 그는 연방정부의 AI정책을 총괄하면서 트럼프의 AI 개발 및 혁신 지원을 강력히 시행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AI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기준과 절차는 필요
하지만 트럼프가 AI 혁신을 강조한다고 하여 그가 AI에 대한 일체의 규제 도입에 반대한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 AI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통제는 트럼프도 반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트럼프 1기 때 발표했던 “미국의 AI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정명령”(2019. 2. 14.)에서 트럼프는 AI 분야에서의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의 AI 전략(American AI Initiative)의 실행을 강조하면서도, AI 기술표준 개발과 AI 안전성 시험 등 AI 개발에 수반되어야 할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다만 그런 절차가 AI 개발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미 국가표준기술원(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NIST)가 개발한 AI 위험관리 체계(Risk Management Framework)와 같이 AI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과 절차는 AI를 개발하거나 사용하는 기업들이 준수해야 할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AI 안전성 확보 절차와 기준이 트럼프 2기의 AI 정책과 배치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에서 AI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규제는 법률에 의한 규제보다는 기업의 자율규제 형태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트럼프는 NIST내에 설립된 AI 안전연구소(AISI)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하였으나, 과연 트럼프가 이를 실제로 폐지할지는 의문이다. AISI는 법률적 규제기관이 아니고, 광범위한 산학연 AI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AI관련 지침과 표준을 개발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자율규제와 모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공화당 정강은 “표현의 자유(Free Speech)와 인류의 번영(Human Flourishing)에 뿌리를 둔 AI 개발을 지원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폭력적 언사로 트위터 계정 폐쇄조치를 당한 트럼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AI를 통한 정보 검열을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등에 폭력적 혹은 차별적 내용의 글을 올리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용납되기 어렵고, 소셜 미디어 운영자가 이를 제한하는 것은 적법한 자율규제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트럼프의 시각이 실제 규제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의 탈규제 정책과 주(州) 차원의 AI 규제법 간의 충돌
트럼프나 미 공화당이 AI 혁신을 위한 ‘탈(脫)규제’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미국내에서 AI 규제가 사라지긴 어렵다. 몇몇 주(州)들이 주법으로 AI 규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2023년 7월 5일부터 미국 최초의 AI 고용법인 ‘자동화된 고용결정 도구법’[1]을 적용하고 있다. 이 법은 “직원의 채용, 계속 고용, 승진을 위한 평가에서 사용되는 AI (AEDT)”가 인종 및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자동화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직원의 채용 및 인사 결정에 AI를 사용하는 고용주들에게 매년 외부 감사기관을 통해 AI 시스템의 편향성(bias) 감사를 받도록 했고 그 감사결과를 온라인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편향성 검사를 받지 않은 AI시스템의 사용은 금지된다. 이 법이 편향성 감사결과를 공시하도록 한 것에 대해 기업들은 차별행위에 대한 소송을 당할 위험에 노출되게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뉴욕주를 비롯한 여러 주들이 이와 유사한 법을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년 5월에는 콜로라도 주 의회가 ‘AI 소비자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2026년 2월부터 고위험 AI시스템의 개발자나 사용자에게 차별적 알고리즘에 의한 위험으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시켰다. 콜로라도 AI법은 EU의 AI법을 참고하여 AI 시스템을 여러가지 위험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별로 다른 의무를 부담시키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금년 2월 스콧 위너(Scott Wiener) 상원의원이 ‘안전한 인공지능 프런티어 모델 혁신법안’(Safe and Secure Innovation for Frontier Artificial Intelligence Models Act) (SB-1047)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AI시스템에 대한 안전성 기준을 설정하고 기업들에게 안전성 시험을 요구하였으며, 프런티어 모델국(Frontier Model Division)을 설치하여 기업들을 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수의 AI 개발기업들이 소재한 캘리포니아의 위상에 비추어 이 법이 통과되면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주(州) AI 규제법들은 기본적으로 해당 주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하지만 콜로라도, 뉴욕, 캘리포니아 등 3개 핵심주만 AI 규제법을 통과시키더라도 미국내에서 활동하는 대기업의 90%가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소수의 핵심 주 AI법 만으로 사실상 연방법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AI를 개발 또는 사용하는 기업들은 각 주들의 AI 관련법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준수할 수밖에 없어 컴플라이언스 부담이 크게 늘게 될 것이다. 미 연방 AI규제법의 채택 가능성 여부
이러한 AI 규제법 확산에 대해 AI에 대한 탈규제를 부르짖는 트럼프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미국 일각에서는 조속히 연방 AI법을 제정하여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AI 규제의 통일적 기준을 제시하는 연방 AI법이 제정된다면 이에 상충되는 주법은 이에 대체되거나 연방법에 맞추어 주법을 개정하여야 할 것이고 이로써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부담은 줄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 AI법안도 이러한 연방법 우선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트럼프 2기에 이러한 연방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평소 AI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캘리포니아 AI법안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2] 머스크는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입성하여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머스크는 트럼프의 AI 정책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트럼프로 하여금 캘리포니아의 AI 규제법과 유사한 연방 AI규제법을 도입하도록 제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규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연방 차원의 AI규제법을 추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AI 규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첨예한 대립 때문에 미국 의회가 AI 관련 입법을 추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5월 민주-공화 양당이 참여한 상원 AI 작업반’(Senate AI Working Group)에서 수개월 간의 의견 수렴 작업을 거친 끝에 ‘AI 정책 로드맵’(AI policy roadmap)[3]을 발표한바 있다. 이 로드맵은 AI 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과 데이터 프라이버시법 제정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로드맵에 대해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만든 친(親)빅테크 계획이라는 강한 비판이 있었고, 결국 어떠한 입법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만큼 연방 AI법 제정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중 AI 압박정책은 강화될 듯
결론적으로 트럼프 2기의 AI정책은 AI 혁신 지원을 통해 미국의 AI 주도권을 강화하고 연방 차원의 AI 규제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나, 주 차원의 AI 규제법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중 패권경쟁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된 중국에 대한 AI 기술이전 금지, 클라우드에 대한 중국 기업의 접근 제한, AI 반도체 수출금지 등 대중 압박정책은 트럼프 2기에서도 계속 유지 또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ndnotes [1] 뉴욕시의 Local Law 144으로 Automated Employment Decision Tools (AEDT) 규제법이다. [ 2 ] 머스크는 지난 8월 27일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이건 어려운 결정이고 일부 사람들을 분노케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고려할 때 캘리포니아는 SB 1047 AI 안전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나는 대중에 잠재 위험이 있는 제품이나 기술을 규제하는 것처럼 AI 규제를 지지해왔다.” [ 3 ] 척 슈머(Chuck Schumer) 상원의원이 발표한 AI 로드맵의 주된 내용은, AI혁신에 32억불의 지금을 지원하고, AI가 제기하는 편견 등 문제들에 대해서는 기존 법률들을 통해 대응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AI의 영향을 살펴보고, 선거 관련 딥페이크에 대한 우려를 다루고, 연방법으로 ‘데이터 프라이버시법’을 제정한다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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