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반도체' 특별좌담
中의 대만 장악 배제못해…美선 韓 미세공정 노하우 절실
보조금 '독소조항'엔 FTA 원칙 내세워 기술이전요구 방어
'한국의 中메모리공장 업그레이드해야 美도 이익' 어필 필요
이해관계국 정책·투자영향 매년 분석해 리스크 대응해야
한국 반도체의 위기다. 메모리 중심의 국내 대표 기업들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새 공급망 구축에도 적극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자신의 영토에 제조 공장을 짓는 우리 기업에 중국 투자 동결, 초과 이익 환수, 공정 접근권 보장 등 무리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가 국가의 핵심 이익과 결부되는 만큼 미국의 제조 공장 유치 전략은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면서 “우리도 각국 정부의 정책, 국내 대표 기업의 해외투자 규모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국가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리스크를 통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한국·대만·일본 등 칩4 동맹의 한 축인) 대만이 위험해질수록 삼성전자(005930) 등 국내 기업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진다”며 “이를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해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좌담회 전문. 사회=이상훈 경제부장
■對美 투자 늘리되 득실 따져야
-결국 보조금을 받아야 하나. 어떤 선택이 좋을까.
△김 교수=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부담이 될 수 있다. 보조금을 받으면서 확실하게 미국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소 조항을 고려해 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사실 한국 반도체 업계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노골적 규제로 혜택을 보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지 않았다면 중국 낸드플래시 업체인 YMTC,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 등은 급성장했을 게 틀림없다. 결국 동맹을 강조하면서 얻어낼 것은 얻어내는 방식이 맞다.
△김 대표=통상 문제를 다루면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본다. 협상이라는 것은 옵션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이번에도 투자는 하면서도 보조금을 받지 않을 수도 있고, 상황을 고려해 조정하는 방식으로 보조금을 선택해야 한다.
설비투자 등은 안보 동맹이라는 기본 축을 가지고 접근하는데 사회적 이해가 걸린 문제를 미국이 배려하지 않는다면 보조금을 받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300조 원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국내 생산량을 늘리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적절한 투자로 대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 교수=미국은 자국의 투자 총액이 자신들 기준에 미치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압박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원천 기술을 미국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더욱 압박에 취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미국의 기대치에 맞춰 미국 현지 투자에 나설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다만 보조금 수혜는 특성상 기업의 자율적 판단의 문제다. 억지로 보조금을 신청할 필요도 없고 장기적 계산하에 수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국내 제조기반 강해야 협상력 높아져
-반도체 전략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대만 침공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만의 위기가 한국의 대미 협상에는 변수가 될 수 있나.
△최 교수=중국이 대만을 접수해 반도체 설비나 기술을 한순간에 장악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런 중국의 노력이 강해질수록 한국이 더 필요해진다. 메모리를 비롯한 미세 공정 노하우가 더 절실해질 것이다. 중국의 대만 위협이 커질수록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게 되고 우리로서는 굉장한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한국의 레버리지가 상당히 강하다는 걸 인식하고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이 교수=지금은 ‘국가가 귀환하는 시대’다. 국가가 산업과 기술에만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이 만나고 있고 산업 정책에 지역 정책, 사회정책 요소 등이 다 포함되고 있다. 이번 반도체 문제도 통상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뛰어난 엔지니어 수급의 문제 등 교육 문제는 뒷전이 돼 산업 경쟁력에서 도태된다. 이런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최 교수=반도체 산업이 단순한 산업이 아닌 한국의 국가 안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보력과 첨단무기 모두 안보와 직결된다. 이해 관계국과 경쟁 상대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의 위험도를 매년 또는 5개년 계획으로 분석해 대응해야 한다. 상대방의 정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산업 안보 차원에서 결합시켜 해외투자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해야 한다. 특히 국내 생산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국내 제조 기반이 살아 있어야 우리의 협상력도 높아진다.
△이 교수=미국의 반도체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 한국이 축적해온 인력을 뺏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경력 인재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 전문화된 인력을 대학에서 육성하는 전략과 함께 기존 인력 혹은 다른 분야의 인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전이시키는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유럽·일본 등과의 기술협력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이들과 기술협력 채널을 넓혀야 미국과의 협력에서도 레버리지가 커질 수 있다.
△김 교수=국회·정부·대학이 안일한 의식에서 벗어나 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미국 보조금 논란을 계기로 반도체 대책을 원점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실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세계 1등 메모리는 안보 자산이다. 메모리만은 지켜야 한다.